숙종 때에 노론4대가인 이명(?命)은 기사환국(己巳換局)과 갑술옥사(甲戌獄事) 등의 정쟁으로 유배와 복직의 세월을 거치면서 한시대의 정국을 이끌었다. 후에 1722년(경종 2) 신임사화(辛壬士禍) 때에 성주로 압송 도중 한강에서 사사(賜死)되었으며, 마찬가지로 노론4대가인 건명(健命) 또한 이 당시 세제(世弟)책봉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등 소론과 맞서 정국을 이끌다 유배되어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. 이와 같이 당시 정국을 둘러싼 사화에 연루되어 사명(師命) · 관명(觀命) · 언지(彦之) · 희지(憙之) 등은 유배되거나 옥중에서 장살 당하였고 삭탈관직되었으나 후에 신원되었다.

이와 같이 밀성군의 자손들은 광해군의 실정과 인조반정, 연산군의 음학과 중종반정을 겪으면서 숙종 때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계속되어 왔던 사화의 격랑 등 정치적인 상황에서 정국을 이끌면서 종묘사직을 수호했다. 또한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나라를 다시 찾고자 한 후손들이 있었는데, 창호(昌鎬) · 건호(建鎬) · 중각(重珏) 등의 후손들이다.


밀성군의 후손 가운데 성록(成祿)을 비롯하여 약 40여 명이 과거에 급제하여 각계 각소에서 맡은 임무를 다하였으며, 근현대로 들어와서는 고시에 합격한 종원도 많고 여러 종원들이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.시문과 그림 및 글씨 등 예능방면에서 유명한 후손으로는 경여(敬輿) · 인상(麟祥) · 건명(健命)이 있다. 특히 건명은 송설체(宋雪體)로 유명하다.